제3의 예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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디팩 초프라 지음 |
송정문화사 펴냄
『제3의 예수』는 성경적 비판주의의 혼돈에서 진정한 예수를 구출하며 신을 멀게만 느끼거나 도외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다. 또한 예수, 그 신비로운 존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사하는 방법을...
"네 이웃을 사랑하라"
"원수를 사랑하라."
"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대고..."
우리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?
만약 이렇게 하고서도 우리 마음속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?
우리는 예수가 아니다.
억지로 할 수는 있으나 마음은 흐트러질 것이다.
왜 그럴까?
예수님의 저 황금 같은 말들을 우리는 어찌해서 실천할 수 없을까?
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을 잘 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.
예수는 깨달은 자다.
예수는 깨달은 자의 언어로 이야기 한 것이다.
즉 예수님의 말씀 >> 그것을 듣고 기록한 자 >> 영어 번역 >> 우리말 번역 >> (설교하는 자 ) >> 우리
최소 4단계를 거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.
그 4단계의 사람들이 정말, 모두 예수님의 언어를 이해한 자들이었을까?
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,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...
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.
"네 이웃을 사랑하라"
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다.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적다.
예수님은
무조건 이웃을, 원수를 사랑하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.
마음속의 분노를 참고 이웃을, 원수를 사랑하는 척 하라고 한 것이 아니다.
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? 도대체...
"한쪽 뺨을 때리거든 다른 뺨도 돌려대고..."
이 말은 한쪽 뺨을 맞았을 때 다른 쪽 뺨도 맞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.
깨달은 자의 언어로 쓴, 예수님의 말을 비유다.
최후의 만찬 [最後─晩餐, The Last Supper], 레오나르도 다 빈치 (1495~1497년 작품)
"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."
즉 예수님은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이야기 한 것이다.
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세상 만물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.
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자가 원수를, 이웃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?
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제 자리로 되돌아 온다.
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.
우리는 우리 자신과 만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?
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워 TV, 술, 게임 등 무던히도 노력을 하지 않는가?
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.